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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제계획과 제4공화국

by 투자퀸 2023. 2. 15.

주철, 강철, 기계, 조선업, 화학은 산업혁명이래 선진국이 독점해온 산업들로서 막대한 자본 투입과 수많은 기술인력 양성이 필요해[9] 스페인도 진출하지 못하던 분야이고 마오쩌둥이 무한정 자원과 노동력을 동원하다 파국을 초래한 분야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모험적인 투자로서 자칫하면 한국경제는 대대손손 빚더미에 오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것에 과감히 도전하였으며, 1974년 원유도입값이 3배 이상 폭등한 오일 쇼크가 발생해 물가상승률이 8배 이상 치솟고 막대한 무역적자가 발생해 부도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대출을 통해 이를 막고 연간 수출증가율은 40%를 경신하는 동시에 노동집약 건설업을 통해 중동지역에 많은 노동인력을 건설투자에 투입함으로써 다량의 오일달러를 벌어옴으로써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내며 농촌발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도시보다 현저하게 뒤쳐진 농촌은 70년대 말에 이르러 가구당 소득이 도시를 역전하였다. 이를 오늘날 해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찾아 배우러오며, UN에서도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정하였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1970년대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원조 농산물을 시장에 판 돈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매우 가난한 농업 후진국에서 15여년만에 공업이 발달한 중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고 평가받는 유신 체제는 곧 각종 반발로 강하게 이어졌으며 유신 정부는 긴급조치들을 선포해 이를 탄압했다. 그러나 YH 사건 등으로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계엄령이 선포된 와중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숨진다. 제4공화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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